Page 59 - 건축구조 Vol. 28 / No.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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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강 마춘경 선생님






            더하여 국제적 안목과 넓은 식견을 갖춘 전문가가 될 것을 당부하시며 출
            간 축하를 해주셨다. 나는 글을 받은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말씀을
            얼마나 소화했을까.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좋아하거나 낙으로 삼는 경지
            는커녕 당장의 현안 해결에 급급했었음을 숨길 수 없다. 프로 엔지니어로
            서 부끄럽다.
             이 글로 의강 선생님의 진면목을 알리기에 턱없이 부족함을 안다. 앞
            서 대한건축학회의 ‘건축구조 60년사’에 마 선생님의 글 ‘성장시대’가 있
            다. “왜곡 되지 않은 과거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 온몸을 던져 그 시대
            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육성을 통한 증언이 반드시 필요하다.”에 이어 소제
            목, 1950년대의 풍경, ACI 기준의 유입 과정, 2-cycle법의 수용, 1960년대
            의 쉘구조, 고층건축시대 등으로 나누어 구조 60년을 회고하며 당신의 구
            조철학을 피력하셨다.
             국민대 정재철 교수, 인하대 김상식 교수 등과 마포 선술집에서 한국사,
            일본사, 공산주의, 근대 구조 및 구조기준 등을 주 화제로 회동하셨다고
            들었다. 전우구조가 마포에 있을 적에 그 자리에 나를 간혹 끼어주셨다.
             의강 마춘경 선생님은 평안남도 성천군 성천읍 하부리 372에서 태어나
            보통학교 재학 중에 선친과 함께 급거 월남하셨다. 1961년에 취적을 하며
            서울에 정착하였다. 서울공대 건축과를 졸업 후 중앙산업, 김중업 건축연
            구소, 무애건축연구소 등에서 구조책임자로 일했다. 1970년부터 ‘표준구
            조연구소’를 설립·자영하였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셨다. 실향민으로서
            6.25에 한이 깊었고 북한정권에 대한 적개심이 남달랐다. 평양고보 동문
            으로는 고김중업 선생님, 고김정철 선생님, 김인석 선생님 등이 계셨다.
             ‘표준구조연구소’를 운영하며 요즈음 젊은이들이 가장 부러워한다는 프
            리랜서이셨고 스스로 매사의 주인이셨다. 자유인이었기에 독립적이고 매
            사에 불편부당하였고 사색이 깊으셨으며, 구조 분야는 물론 동양철학, 중
            국고전 및 일본고대사 등에 해박하셨음은 선생님의 특권이었다. 후생은 의               [그림 5] 의강 선생님의 육필 유고
            강 선생님을 ‘구조시스템을 혁신한 선구자’ 그리고 자유인으로 기억할 것
            이다.




            *  의강 마춘경 선생님 관련 사진자료와 이력사항 등은 둘째 따님이신 마혜린 선생이

             친절하게 챙겨주셨다.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마혜린 선생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구조공학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 구조설계, 건설전문 법무법인,
             강재제품 개발사 등에서 구조전문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지      Journal of  The Korea  Structural  Engineers Association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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